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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보검스님 칼럼] '대한불교호국승가연합' 결성 추진

충북 옥천 가산사서 호국승병 위령제 봉행
조현 대종사 "호국승병 정신 계승" 강조

사단법인 호국불교승병단(단장 경천스님)은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지난 22일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543 가산사 호국승병 위령탑에서 '호국승병 위령제'를 봉행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순국선열이자 호국승병들의 넋을 기렸으며 불교 사부대중 200여 명이 동참했다.

 

가산사 주지 지원스님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의승병 800명과 의병 700명을 모아 이곳 가산사에서 훈련시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 참여했다가 모두가 전사했지만 칠백의총에는 의병만 기리고 의승병은 빠져있다”며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올바르게 선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산사는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허당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이 의승병과 의병을 모집해 훈련하던 곳으로 1675(숙종 원년)년에 호국사찰로 지정됐다.

 

이날 위령제에서 성남 서광사 조현 대종사는 헌사를 통해 "승려로서, 또한 승군으로서 국가의 위기 앞에서 목숨을 걸고 승병을 조직해 나라를 지켜왔던 호국승병들의 숭고한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는 것이 오늘날 승가의 참모습"이라고 강조하며, 호국불교지도자로서 수행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사단법인 호국불교승병단은 이번 위령제를 통해 호국승병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나라를 위한 불교계의 역사적 헌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조현 대종사는 이 자리에서 호국정신과 승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새로운 단체인 '대한불교호국승가연합'의 결성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연합의 대표로는 조현(지환) 스님이 맡기로 했으며, 여산암도 큰스님과 대원 큰스님이 증명법사로 추대됐다. 본사는 성남 서광사에 두며, 실무의장으로는 설송 석혜운 대종사가 위촉됐다.

 

가산사는 720년(신라 성덕왕 19)에 창건된 고찰로 임진왜란 초기에 충청도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혁혁한 공을 세운 중봉 조헌과 승병장 영규의 위패를 모신 호국사찰이다.

 

이 사찰은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산211번지 채운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병자호란 이후에야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오지였고 그 규모 또한 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가산사는 역사기록을 볼 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사세도 미약했지만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의승군과 의병이 훈련했던 호국정신이 깃든 사찰로 부상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영규대사는 서산대사가 승군의 총책임을 맡기 전 자발적으로 승군을 조직한 최초의 승병장이었다.

 

가산사 일대는 이런 승병장 영규대사와 의병장 조헌 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조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다.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은 힘을 합해 청주성을 탈환했지만 금산전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순절했다.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 가산사에서는 영정각과 산신각을 짓고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의 영정을 봉안했는데 지금은 위패만 모셔져 있다.

 

1910년 일제의 강점 이후 이곳이 항일운동의 기지가 될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에서 영정을 강제로 빼앗고 법주사의 말사로 지정했다.

 

가산사 내에 있는 영정각과 산신각은 2000년 12월 22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아미타불좌상은 1980년 11월 13일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됐다가 1991년 5월 5일 가산사 내 화재로 소실돼 1992년 10월 23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다.

 

절 내의 영정각 지붕의 용마루 망와에 쓰여 있는 명문에는 1694년(숙종 20)에 제작된 기와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1695년(숙종 21)에 건립된 영정각은 건축의 형태는 정면 1칸, 측면 1칸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매우 작은 규모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영정각 뒤에 있는 산신각은 산신탱화를 봉안하기 위한 집으로 영정각과 같은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624년(인조 2) 극락전을 중건할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산사 극락전은 1624년 중건할 때 지었으며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내부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인 아미타불좌상이 있었다. 아미타불좌상은 향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90cm이다.

 

복장에서 나온 ‘복장기(腹藏記)’에 따르면 1624년 경상북도 김천시 쌍계사(雙溪寺) 북암(北庵)에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복장에서는 이밖에 유물로 ‘묘법연화경홍전서(妙法蓮華經弘傳書)’1권 등 6점의 문헌이 나왔다.

 

이들 문헌은 1477년(성종 8) 전라북도 완주군 화암사(花巖寺)에서 간행한 것으로 조선초 서지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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