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5 (목)

  • 구름조금동두천 -0.7℃
  • 맑음강릉 5.4℃
  • 맑음서울 -0.6℃
  • 구름많음대전 2.1℃
  • 맑음대구 3.7℃
  • 맑음울산 4.4℃
  • 광주 1.3℃
  • 맑음부산 5.9℃
  • 흐림고창 1.7℃
  • 흐림제주 7.7℃
  • 맑음강화 -1.1℃
  • 흐림보은 -0.3℃
  • 구름많음금산 1.0℃
  • 구름많음강진군 3.7℃
  • 맑음경주시 4.2℃
  • 맑음거제 5.9℃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오피니언

[문화시론] 거대 집권당의 '입법 만능주의'

법률을 제정하거나 수정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회의원 10명 이상이 공동 발의한 법률안은 소관 상임위 심사를 거쳐 법제사법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통과한 뒤 본회의 의결과 대통령 공포라는 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법률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직접 규율하는 강력한 규범이기 때문에 이러한 절차는 불가피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입법의 신중함은 다수의 힘을 견제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법률안은 한번 공포되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고, 국민 생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든다. 시장에서 거래의 규칙을 바꾸고, 온라인에서 표현의 한계를 정하며, 법정에선 처벌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입법 과정에서 잠재적 부작용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현안을 당장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3년 뒤나 10년 뒤 어떤 왜곡과 부작용을 낳을지 헤아려보지 않으면 법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법치국가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법률을 안이하게 만들 때다.

 

최근 국회의 입법 과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향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법안 모두 정치적 현안을 법률로 일거에 해결하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전자는 헌법상 법관의 독립과 재판받을 권리를, 후자는 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비밀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와 학계에서 제기된다. 두 법안은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입법 만능주의는 문제가 생기면 법률부터 고치고, 정치적 필요가 생기면 법률로 밀어붙이는 것을 말한다. 법률은 다수의 의사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헌법의 이념과 정신을 구체화하는 규범이다.

 

현재 국회를 지배하는 집권당의 다수 의석은 입법의 속도를 높였지만, 입법의 품질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법률의 양이 늘어난다고 정의가 자동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 소통이 성마른 입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졸속으로 마련된 법률안은 반드시 대가를 청구한다. 내용에서 정합성을 잃고, 적용에서 평등성을 놓치며, 집행에서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법률은 국민에게 비용을 전가한다. 위헌 논란 속에 소송이 잇따를 수도 있다.

 

입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법치국가는 얼마나 법률을 양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법을 갖고 있고 이를 지키고 있느냐로 평가받는다. 입법 만능주의는 문제 해결의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법치주의를 옭아매는 함정일 수도 있다.
 

관련기사

3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