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청명한 하늘은 한층 드높고 아침저녁의 쌀쌀한 날씨는 삶을 더욱 활기차게 만든다. 올해는 음력 윤달이 끼어 한가위가 한 달 정도 늦게 찾아와 추석 차례 상에 오곡백과를 풍성하게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위는 단순히 둥근 달만 뜨는 날이 아니라, 공동체가 다시 모이고 가족의 인연이 더욱 끈끈해지는 날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랜 농경사회에서의 추석은 수확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수확의 풍요를 함께 누렸다. 한가위는 자연과 인간,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가 일반화되었으며, 명절조차 혼자 보내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공항으로 향하는 이들의 ‘해외 탈출’ 시기가 된 지도 오래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명절의 정신까지 버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추석 분위기야 시대의 추세라고 차치하더라도 추석을 앞두고 현재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팽배하고 있다. 전통적인 추석명절에는 가족이 모여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조상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지만, 올 추석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 요소들로 인해 민심을 흔들고 있다.
정치권은 민생보다 정쟁에 몰두하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고, 시민들은 정치로부터 점점 멀어져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은 깊어만 가고 있다.
경제 역시 녹록지가 않다.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경기 침체 속에서 추석 특수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 불안도 심화되고 있다. 초저출산과 고령화로 한국 사회의 미래는 더욱 어둡고, 노인 빈곤과 고독사는 더 이상 소외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에서의 어설픈 외교로 국내 불안 요소들과 맞물리며 국민들의 체감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추석은 가족과 공동체의 온기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족 간 갈등, 경제적 고통,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추석은 즐거움을 주기보다 불편한 명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많은 고통과 좌절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명절 한가위에 찬물을 끼얹는 불안감을 모두 떨쳐버려야 한다.
한가위의 달은 여전히 둥글고 큰 것처럼 추석을 맞아 그 본래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풍요’란 배부름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혼란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추석의 의미를 되짚어 봐야 한다. 전통은 본래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추석의 전통은 화려한 차례상이나 복잡한 의례가 아니다. 반만년 역사와 전통이 물려준 관계와 감사, 나눔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추석을 맞이하면서 먼저, 그간 소원했던 이웃과의 관계를 복원하자. 추석 연휴에는 바쁜 일상을 살아오면서 잊어버렸던 한 통의 전화, 따뜻한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도록 단절된 서로의 관계를 복구하고 감사와 소통의 가교를 만들어 보자. 다시 이어진 다리를 통하여 행복의 작은 메시지를 전해보자.
다음은 이웃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자. 상다리 휘는 명절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이웃과 함께 웃고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홀로 명절을 보내는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조그마한 정성을 건네는 것도 한가위를 따뜻하게 하는 진정한 실천방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상을 기억하는 마음을 가지자. 꼭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가족의 뿌리를 기억하고 조상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는 마음은 반드시 이어가야 할 우리의 전통이다. 추석음식을 들기 전에 먼저 집안의 역사와 훌륭한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아이들이 자라서 가문을 빛내고 늠름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추석이어서가 아니라 최근 우리사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사상과 파당에 매몰되어 미래를 향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가위를 맞아 풀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추석의 의미라도 제대로 새기도록 하자.
올해는 그간 명절이 가진 관행적이고 형식적인 의무를 이행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마음을 다하여 추석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일부터 옮기는 중추절이 되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