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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투데이 테마 기행>독일편(3) 세계예술사상 거장들의 삶의 자취를 찾아서

헤르만 헤세의 생애, 전3막의 무대를 찾아서 (3)

  헤세는 칼브를 중심으로 외롭고 괴로운 성장기를 지낸 뒤 왕성한 작가생활과 함께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했던 가이엔호펜 시대를 거쳐 베른으로 이주했다. 후에 아내와의 불화로 인한 우울한 시기를 보낸 뒤, 가족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결별하고 스위스 최남단 루가노 호수 인근의 산등성이에 있는 작은 마을 몬타뇰라로 단신 이주했다. 이곳에서 스위스 국적을 다시 얻고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쓰며 두 번의 결혼을 하는 등 그의 인생의 기나긴 3막이 43년간에 걸쳐 펼쳐졌다. 


헤세는 몬타뇰라로 와서 처음 12년 동안은 카사 카무치(Casa Camuzzi)라는 거대한 성 같은 집의 일부를 빌려 살았다. 이때 헤세는 따뜻한 햇빛과 가족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즐기며, 어려서부터 시달려 왔던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싯달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 명작을 썼으며,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을 출판한 것도 이곳에 이주한 직후였다.


1931년 50대 중반이던 헤세가 세 번째 결혼을 했을 때 친구들이 평생 기거할 집으로 카사 로싸(Casa Rossa 나중에 카사 헤세가되었다)를 지어줘 그 집에서 그림그리기와 정원일에 심취하면서 십여 년에 걸쳐 노벨상 수상작인 <유리알유희>를 썼다. 이 책은 독일에서 출간이 금지돼 스위스에서 발표됐는데, 후에 노벨상을 받게 되었을 때 시상식에 불참하고 스위스의 한 장관을 통해 연설문을 대리낭독케 했다. 전쟁 중에 이 집은 토마스 만 등 문인들에게 나치로부터의 피난처로도 제공됐다. 헤세는 이 집에서 1962년 타계했다.


카사 로싸는 카사 카무치에서 금방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언덕길을 올라가면 꼭대기에 집이 있는데, 현재는 다른 가족이 살고 있어 비공개이며 당시의 사진들과 그림을 통해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