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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검스님 칼럼] 왜 사는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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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관점에 따라서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신앙을 갖고 있다면, 어떤 초월자나 창조자의 의지에 의해서 탄생했으니 지침대로 살면 무난할 것이라고 단순하게 여기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다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적으로 사고한다면 해부학적 신체구조나 유전자 등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영혼(靈魂)이랄까, 마음이랄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영(靈)과 육(肉)은 하나인가, 아니면 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이원론적인 것인가.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면 부단하게 진리를 추구하면서 사색하는 존재로서의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삶의 명제가 우선 떠오른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프랑스어로 "Je pense, donc je suis")라고 썼지만,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라는 라틴어로 된 명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다른 모든 지식이 상상에 의한 허구이거나 거짓 또는 오해라고 할지라도 한 존재가 그것을 의심하는 행위는 최소한 그 존재가 실재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식(자각)이 있으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인식론에 비중을 두고 이런 주장을 폈다. 서양 철학의 근간에 영향을 준 명제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서구사상계에서는 데카르트 이전에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생각하는 나"라는 개념에서 코기토를 사용한 바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주의를 배격하기 위해 확고한 진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으로서 코기토를 사용하였다.

 

사실 데카르트는 중세 초의 이러한 주장을 근세의 자연 철학을 위해 다시 살려낸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히포넨시스 라고도 불린다.

 

그는 4세기 북아프리카인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기독교 보편교회 시기의 신학자이자 성직자, 주교로,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회 등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과 같은 종교 개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제 불교적 관점에서 이야기해보자. 불교에서는 인간 존재를 오온(五蘊)으로 파악한다. 삶의 본질은 연기적(緣起的) 관계로 파악한다.

 

오온이란 용어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하는데, 5온은 인도적(印度的) 사유체계에서 통찰한 인간존재의 실상이다. 생멸(生滅)하고 변화(變化)하는 모든 것은 다섯 가지 요소(要素)로 구성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들은 색(色)·수(受)·상(想)·행(行)· 식(識)을 말한다.

 

색온(色蘊)이라는 것은 육체나 물질을 말하며, 수온(受蘊)은 지각이나 느낌을 말하고, 상온(想蘊)은 표상이나 생각을 의미하며, 행온(行蘊)은 욕구나 의지를 말하고), 식온(識蘊)은 마음이나 의식을 뜻한다.

 

붓다 당시 인도 중부 지방의 방언인 빨리어로 ‘빤짜 칸다(pañca khandha)’라고 했으며, 고급문어인 산스크리트어로는 ‘빤짜 스칸다(pañca-skandha)’라고 발음했다. 오온은 오음(五陰), 5중(五衆) 또는 5취(五聚)라고도 한다.

 

이 오온설(五蘊說)을 제대로만 이해해도 불교 교리나 철학의 반을 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승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고 했는데, 이런 다섯 가지 요소가 다 공(空)하다는 것인데,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육체나 물질은 즉 공(비어있음)이고, 공(비어있음)이지만 육체요 물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사상(空思想)을 철저히 규명하면서 철학적 논증읗 천착해 가는 것이 대승철학이기도 하다. 이 공사상을 제대로 체인하면 대승불교철학을 반 이상 터득하는 것이다.

 

또 불교에서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연기법(緣起法)으로 설명한다.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연기법칙은 인과법칙이기도 하다. 인연법 또는 인과법이라 하는데, 붓다(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고 출현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보편 법칙, 즉 우주적인 법칙이다.

 

다만 붓다는 이 우주적인 법칙을 완전히 깨달은 후에 그것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12연기설(十二緣起說)의 형태로 세상에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빨리어로는 ‘빠띠까삼무빠다(paṭiccasamuppāda)’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쁘랏티탸삼뭇빠다(Pratītyasamutpāda)’라 발음한다. 영어로는 ‘dependent origination’, 또는 ‘ dependent arising’이라고 하는데, 이 연기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불교교리나 불교철학의 핵심을 관통하게 된다.

 

불교는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의 종교가 아니다. 이런 공(空)과 연기(緣起)의 진리를 알고, 세속적 영화인 부(富). 명예(名譽). 권력(權力) 등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갈애(渴愛)의 욕망에 사로잡혀 참다운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민주사회에서의 조화와 협력을 하면서 공동운명체적 삶을 영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라치면 지나친 욕망과 갈애를 자제하고 남과의 상생적인 관계형성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관용하면서 짧은 인생 보람 있고 건강하게 알차게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