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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결칼럼 – 이산가족의 눈물

을미년 청양 띠의 설 민속절이 지났다.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 귀경 인파가 올해는 30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의 전통명절 설날은 새해가 들어서는 첫날을 기념하고 새해 첫날부터 좋은 기운을 염원하는 우리민족 축제의 날 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민족 최대의 이러한 축제 앞에 눈물을 흘려야하는 우리 이웃이 있다. 가고파도 갈 수 없고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우리민족 최고의 아픈 역사, 이산가족이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으면서 이제는 하나의 대한민국, 아니 독립된 대한의 나라로 출발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미국과 구소련, 두 나라가 우리나라를 또 한번 울리는 역할을 할 줄 아무도 몰랐다. 해방된 조국의 앞날은 하루하루를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더니 결국 북쪽은 구소련, 남쪽은 미국이 주둔하며 분리된 대한민국에 불운이 감지되고 있었다.

결국 1948년 남한만의 총선을 거쳐 반쪽짜리 대한민국이 탄생된 것이다. 그 후 계속 이데올로기 적인 문제로 티격태격하며 무언의 3.8선을 두고 남북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의 정부가 들어서며 민족의 가치관을 성립하며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6월25일 새벽4시를 기해 북한 정권의 김일성은 구소련을 등에 업고 탱크를 앞세운 채 38선을 밀고 내려와 적화 통일을 위해 남한을 공격한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 이제는 한민족으로 통일된 나라로 사는가 싶더니 또 남북으로 갈리어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맞대고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1953년 휴전을 하면서 전쟁은 끝났지만 이 전쟁으로 약 200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는 비극을 맛본 것이다. 남북한 인구가 3000만 명 정도였으니 약 7분의1이 희생된 것 이었다. 이때 실종자를 비롯해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태로 돌아선 이산가족이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주도아래 1971년 8월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가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주선해주기 위해 남북적십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조선적십자회에 제의하자 손성필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제의를 받아들여 판문점 접촉을 갖기로 했다. 

그 후 남북적십자 대표단은 1985년 8월15일에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 공연단의 교환방문을 실시하는 데 합의하고, 1985년 8월22일 개최된 제8차 남북적십자 본회의에서 교환방문시기와 방문단의 구성·규모·교환방법 등 모두 20개항에 합의했다. 

이로써 1985년 9월 20~23일의 3박 4일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 공연단의 동시 교환방문이 실현돼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한 남북한 총 100여 명의 고향방문단 중에서 65명이 92명의 가족·친지들과 극적으로 상봉, 재회의 감격을 나누었다.

이산가족 고향 방문사업은 비록 방문지역과 규모가 제한되었고 추진과정에서 다소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산가족이 직접 남북한을 왕래하며 가족·친지들과 만난 선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 후 2010년 연평포격사건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2014년 2월20-22일 남측 신청자가 북측 가족을 만나는 1차 상봉과 23-25일 북측 신청자가 남측 가족을 만나는 2차 상봉으로 나뉘어 5박6일 동안 금강산에서 진행됐다. 1차 상봉에선 우리 측 방문단 82명이 동반가족 58명과 함께 북측 가족 178명을 만났고, 2차상봉은 북측 신청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만났다. 

그리고 그동안 화상상봉은 총 7차까지 이루어졌다. 2007년 11월에 열린 제7차 화상상봉 행사에는 남북 39가족씩 모두 78가족 500여 명이 참가해 남북을 광 전용망으로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 

한편 KBS에서는 1983년에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시작했다. 방영된 453시간 45분간 연속 생방송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대단했다. 총 10만 952건이 접수되어 이중 1만180 여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다. 비록 북한쪽의 참여 없는 남한만의 생방송이었지만 전 세계의 눈이 주목하는 괄목할 만한 결과를 낳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 생존자를 위해서 남북의 당국자가 빨리 만나서 상봉행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들의 생명이 영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꿈에서도 그리운 부보형제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이념과 사상 그리고 정치를 떠나 인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해야 한다. 같은 민족끼리 이처럼 반세기 이상을 등질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이웃 나라에서는 이처럼 우리의 싸움을 보면서 겉으론 위하는 척 하지만 흐뭇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한민족이 힘을 합할 수 만 있다면 전 세계 10대 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전 세계는 이제 전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하며 때론 이별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맛본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이렇게 아픈데 부모형제간의 생이별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이 갈 것이다. 

가슴이 응어리져 시리고 너무 아파 심장병, 화병 등에 걸려 죽어가는 이산가족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사람의 소원을 들어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남들은 명절이라고 들떠있는데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만 내쉴 뿐 이다.

한민족의 커다란 시련을 이제는 우리의 대에서 끝을 내야한다.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런 쓰디쓴 아픔을 맛보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겐 아픔 말고 기쁨을, 눈물 말고 웃음을, 싸움 말고 평화가 기다리는 대한민국이 되게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슬픔을 나눠야 한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고통이 발생되지 않도록 나라 안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남의 나라에 의존해서 살았던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말고, 자주국방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