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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고] 국무회의 ‘왕따’와 사퇴 압박

이로문 법학박사·법률행정공감행정사

국무회의 ‘왕따’와 사퇴 압박 

 

이로문 법학박사·법률행정공감행정사 
 

국회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준 공기업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민원을 들고 찾아왔다.

해임할 사유가 없으니 윗선에서 의원면직을 신청하라고 압박을 하다가 결국에는 건수를 만들어 해당 직원을 해임했다는 것이다.

 

이 직원은 결국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직장에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일도 주지 않고 각종 회의에도 참석시키지 않는 등 따돌림, 즉 왕따를 시켰다고 한다.

 

요즘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국민권익위원장 및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하고 국무회의에도 참석시키지 않는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뉴스를 접하자마자 기업에서 직원을 해고하려고 해고사유를 찾아도 사유가 없자 이런 식으로 직원을 따돌리다 결국에는 직원이 스스로 사퇴하게 만든 사건들이 떠올랐다.

 

현 정부에서의 사퇴 압박과 국무회의 참석 배제가 직장에서의 해임 수법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정부와 여당이 혼연일체가 되어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입법권까지 동원하려고 한다. 

 

권익위원장이나 방통위원장은 국무회의 참석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고 지난 14일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논란이 되자 윤 대통령은 비공개 논의를 많이 하는 국무회의에 권익위원장이나 방통위원장은 굳이 올 필요도 없는 사람이라고 발언했다.

 

장관급인 권익위원장과 방통위원장은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2008년 기관 신설 이후 관례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 왔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국무회의에 참석시키지 않은 것은 전 정권의 사람이기 때문에 사퇴를 종용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것만큼 노골적인 사퇴압박이 있을 수 있는가. 부당한 사퇴요구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두 위원장을 향해 “새 정부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권 대표의 말대로라면 임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기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무슨 수로 보장하겠는가? 참으로 공당의 대표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장관과 대통령실 구성원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임명한다고 치자.

 

하지만 공직자를 감시해야 하는 권익위나 방송의 공공성을 고려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려고 설치된 방통위원장의 임면을 법률로 엄격하게 규정할 이유가 무엇인가? 법률의 취지에 대해 무지한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심지어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때에 공공기관장의 임기 또한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고, 기관장의 임기 및 연임 기간을 각각 2년 6개월로 해 대통령의 임기인 5년과 일치시킨다"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정권에 충성을 다하려는 심정은 알겠지만 이러한 입법을 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하는 발상이다.    

 

권익위원장에게는 여권에서 물러나라는 연락까지 했다고 한다. 권익위원장에게 물러나라고 한 인사가 누구인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아니 자신이 있다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만약 나서지 않는다면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자인하는 꼴이다. 윤 대통령 및 대통령실 또는 장관 등과 교감이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만약 이들과 교감이 있었다면 이는 분명한 위법이다.   

 

현재 검찰은 문재인 정부 ‘기관장 사퇴 압력’ 의혹 수사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적폐수사는 전 정권에서도 있었다며 검찰의 수사를 거들고 나섰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 정부에서와 같은 사퇴압박 수준은 적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은 적폐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정권을 잡으면 알아서 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전 정권에서도 현 정권과 같은 수준으로 사퇴를 종용했는데 현 정권의 검찰이 이를 적폐로 몰아가는 것일까. 어느 경우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현 정권에서의 사퇴압박도 동시에 수사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 정권의 사퇴압박을 보면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행위의 주체를 직접적인 직권에 속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확대하고, 직권남용이라는 요건 역시 완화해야 한다. 초중고 수준의 유치한 따돌림으로 기관장을 압박하는 것도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당은 즉각 직권남용죄와 관련된 형법개정안 심사에 착수하기를 바란다. 추가적으로 임기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그 임기를 더 철저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전 정권에 대한 수사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사퇴 압박을 당장 멈추고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