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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유명사찰 탐방] ⑩ ‘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 신흥사 향성선원 무문관 개원

보검스님 (세계블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회주 우송스님과 수좌 11명 방문 잠그고 하루 한 끼만 먹고 정진 

풍진작 서원하며 조계종 종조 도의, 고암 성준 무산 선맥 계승 

 

한국불교는 인도 서역 중국으로 이어지는 불교 명상법인 간화선법을 이어 받아 해동에서 선양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법을 전한 분이 바로 신라시대 도의(道義) 조계종 종조(宗祖)이다.

도의 선사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로서 780년 선덕왕 1년에 당나라에 가서 마조 도일의 법을 이은 서당(西堂) 지장(智藏,735~814)의 제자가 되어 전법심인(傳法心印)의 불조혜명(佛祖慧命)을 물려받고 821년 헌덕왕 13년에 귀국하여 설악산 진전사에 주석했다. 도의 선사는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개조(開祖)로서 조계종 종조가 되었다. 

 

 

 설악산 신흥사는 진전사의 본사(本寺)로서 조계선풍의 시원 사찰로 정착했다. 설악산 신흥사가 조계선풍의 시원(始源) 사찰이 되는 데는, 40여 년 간 설악산문(雪嶽山門)을 지키면서 백담사 무문관 무금선원(無今禪院)에서 3년 결사(結社)를 성만하고 조계종기본선원 조실 등을 역임한 설악당 무산 대종사의 원력이 크다고 하겠다.     

 

무문관(無門關) 수행은 선원의 대중이 큰방에서 함께 참선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작은 독방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홀로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고독과 씨름하면서 화두공안을 타파하기 위하여 혹독한 수행을 하는 방법이다.

 

 

 

회주 우송 스님은 다른 11명의 고참 수좌들과 자물쇠로 걸어 잠근 방 안에서 3개월 동안 홀로 화두 참구를 해야만 한다. 하루 한 끼의 식사만으로 견뎌야 하며 매일 오전 11시 한번만 문이 열린다. 문을 잠그고 최소한의 공양으로 하루 한 끼만을 제공하는 일종식(一種食)의 식사만 허락되는 일종의 참선수행 전통이다.  

 

 5월15일 신흥사 설법전에서 열린 임인년 하안거 결제법회를 마친 뒤 11명의 스님은 간단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곧바로 향성선원 무문관으로 향했으며, “정진 잘 하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며 정진하십시오” 라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수좌들은 한명씩 문을 열고 개별 수행처인 독방으로 각기 들어갔다. 곧바로 무문관 수행처 독방 문이 굳게 잠겼다. 

 

《무문관(無門關》은 중국 남송(南宋)의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편찬한 화두공안집 책이름이다. 무문 혜개 선사는 선종 5가의 하나인 임제종 스님으로서 1228년 46세 때, 용상사라는 절에서 하안거를 보내면서 수행납자들을 위하여 고칙48칙(古則四八則)을 엮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서 화두공안집을 편찬했다.

 

 

《무문관》은 《벽암록》·《종용록》과 함께 옛날부터 선림(禪林)에서 존중되었으며, 이 두 서적보다 공안(公案)의 수가 적고 내용도 간단명료하며 더욱이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상적으로도 일관성(一貫性)이 있기 때문에 참선하는 선객들과 일반에게 널리 애용되었다.
 

특히 제1칙 아래의 조주구자(趙州狗子)의 공안은 유명하며, 여기서 거론되는 무자(無字)야말로 종문(宗門)의 일관(一關)이며, 이 일관을 이름지어 "무문관(無門關)"이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어떤 승(僧)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구자(狗子)로 다시 태어나도 불성(佛性)이 있겠는가 없겠는가." 라고 하자,
조주가 가로되, "있도다."

 

또 다른 승이 묻기를, "구자로 환생(還生)되어 불성이 있겠는가 없겠는가."라고 묻자, 조주가 대답하되, "없도다."고 대답했다.
 

위의 조주구자의 공안에서 조주가 말한 유무대립(有無對立)의 두 가지 대답에 대하여 본서는 무(無)로써 대답하고 있는데, 이 무야말로 유무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무(絶對無), 즉 무자(無字)를 단적으로 설시(說示)한 것이다. 

 

이 무문관이라는 선원의 독방 구조는 바로 이 《무문관》이라는 화두공안집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