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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유명사찰 탐방]⑨ 서울 대각사와 종묘 

보검스님 (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용성대종사 3.1독립운동 산실, 조선왕조 역대임금 왕후 신주 모신 곳 

서울 종로 종묘 옆 돌담길 부근에 위치한 대각사(大覺寺)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10길 87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재단법인 대각회 소속사찰이다. 대각사는 3.1 운동 33인 가운데 한 분인 용성(龍城) 대종사가 1911년 봉익동 1번지에 세운 사찰이다.

 

불교대표로 용성 대종사는 만해 한용운스님과 3.1운동에 참여했다. 만해스님은 1916년 대각사를 찾았으며, 이후 만해는 서울에 있을 때 주로 대각사에 머물곤 하였다. 
 

용성진종 대종사는 만해 한용운스님과 함께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으로 3.1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경찰에 피체되어 2년여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뒤에는 불경 번역과 전법 및 독립운동 지원에 나섰다. 

 

 

용성진종 대종사가 1922년 불교 단체인 대각교(대각회)를 설립한 뒤, 이곳 대각사를 중심으로 대각교는 확장을 거듭하여 1928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각일요학교가 설립되었고, 이듬해에는 선회(禪會)가 개설되었으며, 1930년에는 대각성전과 요사채가 새로 지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1939년 조선불교선종총림, 1944년에 다시 경성포교당 대각선원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각교가 대각사를 중심으로 조선인의 민족자주성을 일깨우고 있다고 판단한 조선총독부에 의해 1931년 대각사의 재산이 몰수되는 등 본격적으로 탄압받기도 하였다. 용성진종은 해방을 5년 앞둔 1940년 음력 2월 24일 입적하였다. 1945년 12월 12일 백범 김구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을 환영하는 귀국봉영회가 이곳 대각사에서 마련되었다.
 

1969년 용성진종의 제자인 동헌을 비롯한 승려들이 대각교 창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재단법인 대각회를 대각사에 설립하였고, 1986년 경내에 있던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식 건물로 재신축하였다.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일종의 유교 사당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상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의 남쪽에 인접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로가 나면서 끊기고, 현재는 육교로 연결되어 있다. 
 

종묘제례는 조상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당인 종묘에서 수행하며, 조상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도록 간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종묘제례는 왕족의 후손들이 제례를 조직하며 음악, 무용,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의례가 봉행되는 동안, 제관들은 의례복을 입으며 왕은 왕관을, 다른 이들은 관을 써서 복장을 갖추고 음식과 술을 제기에 담아 조상에게 바친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종묘제례가 봉행되는 동안 연주되는 음악으로 기악(樂)과 노래(歌)에 춤(舞)이 함께 연행된다. 음악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 11곡이 한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편종, 편경, 방향(方響)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을 이루고, 여기에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진다.

 

이 위에 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구사한다. 정전 앞 계단 위(상월대)에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등가(登歌)라 하고, 계단 아래 뜰(하월대)에서 노랫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軒架)라고 부른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종묘의 건축물들과 600여 년간 제례행사를 지내 온 가치가 인정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와 제사를 지낼 때에 춤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인 종묘 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세종대왕 작곡)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 째 주 일요일에 어가행렬과 함께 전주 이씨 종친에 의한 제사로 거행된다. 종묘는 사직단과 함께 조상에 대한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지난 5월 1일에 봉행됐다. 
 1392년 조선 태조는 즉위 12일 만인 8월 16일(음력 7월 28일) 자신의 4대조에게 차례로 목조, 익조, 도조, 환조로 왕의 칭호를 올리고, 그 비에게도 각각 효비, 정비, 경비, 의비의 존호를 올렸다. 8월에는 신하를 한양에 파견하여 고려 시대 남경의 이궁을 손질케 하고 수리를 끝나는 대로 한양으로 천도하고자 하였다. 태조는 가장 먼저 종묘와 사직을 건설하였는데,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그 다음 해에 세웠다. 

 

 

현재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 건물은 종묘 정전과 영녕전으로, 태조가 종묘를 건설할 당시는 종묘 정전뿐이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별묘인데, 세종 때 처음 건립되었다.
 

종묘대제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에서 주관한다. 이 단체는 1955년 숭조(崇祖)와 친족을 바탕으로 조선 및 대한제국의 유.무형문화재의 보존관리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 만전을 기하기 위해 만든 사단법인이다. 5대 제향(조경단 대제, 원구대제, 종묘대제, 사직대제, 건원릉대제)과 칠궁제를 주관하는 공식 단체이며, 원사(院舍)는 지상5층 지하1층 규모의 건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139번지 이화회관(李花會館)에 있다.
 

필자는 종묘와 대각사를 가끔씩 둘러보곤 한다. 종묘는 이씨 조선의 사당으로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종묘대제와 제례악은 외국인들에게도 관심을 끌기 때문에 자주 안내를 하는 편이다. 또한 대각사는 종묘 지근거리에 있어서 자주 들리곤 한다. 대각사는 3.1운동을 주도한 용성 대종사가 주석했으며, 만해 한용운 스님도 자주 들려서 용성 스님의 지도를 받던 곳이라 한국근대불교사에 있어서 의미가 큰 사찰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