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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유명사찰 탐방] ⑧ 조계사와  연등축제    

보검스님 (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 대표)

국가무형문화재 122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

연등축제는 연등회란 명칭으로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2012년 4월 6일 지정되었으며,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2020년 등재되었다.

불기 2566년 연등회는 지난 4월 30일 오후 4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장장 5시간 동안 법회와 연등축제 행렬이 진행됐다.     

 

 

연등(燃燈)이란 등불을 밝힌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등불을 달아 불을 밝힘으로써 무명(無明:어리석음)을 깨치라 가르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귀의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불교에서 등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의미로 지혜에 비유되었다. 이를 등공양(燈供養)이라 하여 향공양(香供養)과 더불어 중요시하였다. 또한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관등(觀燈)이라고 한다. 《삼국유사》 〈감통편〉(感通篇)에도 불등에 관한 설화가 있다. 등불은 대개 마름모육팔면체의 모양을 한 것이 많다.

 


 

연등회는 처음에는 정월 대보름에 열렸는데 나중에 2월 보름으로 옮겨졌다가 고려 말 공민왕 시대부터는 연등도감을 설치해서 부처님 오신 날에 열렸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연등회가 금지되기도 했으나, 민중들은 꾸준히 연등회를 지속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등축제는 1975년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그 이듬해인 1976년부터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연등행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동국대 운동장에서 종로 거를 거쳐 보신각 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신라 진흥왕 12년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열리기 시작하여, 특히 고려시대 때 성행하였고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 날에는 등불을 밝혀 다과(茶菓)를 베풀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며,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 속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연등회는 고려시대를 통하여 겨울의 팔관회와 더불어 중요한 연중 행사였다. 팔관회는 왕도(王都:개경)와 서경에서만 행하여졌으나, 연등회는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거행되었다고 한다. 조선 성종 때 유학자들의 반대로 중단되었으나 현종 때 다시 행해졌고, 조선 왕조에 와서도 연등회가 있었다.
 

이번 연등회는 3년 만에 돌아온 행사였다. 연등행렬에 수만 인파가 몰렸다. 연등회 때면 찾아온 외국인들도 대거 돌아왔다. 거리는 박수와 환호로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을 반겼다.

 연등행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동국대운동장에서 어울림마당과 연등법회를 개최하고, 참석 대중들과 각 사찰과 불교단체들이 서울 흥인지문을 출발 종로5가, 종로3가, 종각사거리를 거쳐 조계사까지 수만 개의 다양한 등을 선보이며 행진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연등회의 깃발을 앞세우고 인로왕번과 오방불번이 연등행렬을 이끌었다. 취타대의 연주에 범천등, 제석천등, 사천왕등, 연, 육공양등 이 조계사를 향해 행진했다. 동자동녀, 그리고 정반왕과 마야부인이 거리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주악천인 등 전통등 행렬이 이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실외 마스크 착용도 해제를 앞두고 시민들은 종로 거리를 가득 채웠다. 불자들이 등을 들고 손을 흔들자 박수와 환호로 응원하고 연등행렬과 장엄등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과 휴대폰을 손마다 들었고, 영상을 촬영하며 소중한 일상을 기억에 담았다.
 7시께 흥인지문을 출발한 연등행렬은 밤 9시께 대부분 조계사에 도착하면서, 보신각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와 종각 네거리는 회향한마당을 함께하는 불자와 시민들로 채워졌다.

 

조계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대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대승의 보살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조계사는 일제치하인 1910년, 조선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각황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총본산으로 근대 한국불교 최초의 포교당, 일제하 최초의 포교당이었으며 4대문 안에 최초로 자리 잡은 사찰이었다. 1937년 각황사를 현재의 조계사로 옮기는 공사를 시작, 이듬해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전하는 형식을 취하여 절 이름을 태고사로 했다.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조계사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불교와 그 대표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사는 국제 문화도시인 서울의 도심인 종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일한 전통 사찰로서, 휴식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최근 대웅전 중수, 일주문 건립 등 중창불사를 통해 총본산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어나감으로써, 수행과 신행활동 그리고 역사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4시간 경내 개방을 통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혹은 불자든 아니든 간에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들를 수 있으며, 불교 관련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불자와 시민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