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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예

<새날의 기도> 릴레이 에세이 -5- 안혜숙 소설가

문화투데이는 릴레이 형식으로 매주 작가들의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차 한잔 나누며 속삭이는 우리들의 이야기

새날의 기도


안혜숙

 

천만년 만만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새해의 다짐을 했다.

그 찰나에 스친 친구의 영정 사진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고, 폐암으로 떠났다는 친구의 부고를 받고 찾아간 장례식장의 썰렁함에 놀랐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 가슴이 시렸다.
 

살아생전 친구들 애경사라면 맨 먼저 나서고 누구라도 도움을 주던 순이의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초라해서 화가 났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순이의 집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친구들 얼굴이 보이지 않음을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핑계를 대면서도 야속한 마음은 거둘 수가 없었다.
 

아무렴 갑작스런 시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집안이 망했다는 소문과 함께 두문불출한다는, 그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자꾸만 화가 났다. 사람 인심이라는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상주들 얼굴 보기가 민망해서 돌아서 나올 때는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으나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가까운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바로 창구 넘어로 벽에 걸린 추사 김정희의 세안도(歲寒圖)가 눈에 들어왔다.
 

추사 김정희는 평소 많은 지인들의 추앙을 받았지만, 막상 제주도 유배지로 떠난 후에는 그의 안부도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도 중국 사절로 함께 동행했던 이상직이란 선비는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해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까지 그 책들을 전했다..
 

유배생활로 극도의 외로움과 어려운 시련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 있던 추사에게 그의 선물은 감동이고 위로였을 것이다. 추사는 이상직의 선물과 우정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바로 세한도였다.
세한(歲寒)은 논어의 한 구절로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는 뜻이다.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모든 나무가 푸르지만 날씨가 차가워지는 늦가을이 되면 상록수와 활엽수가 확연히 구분된다. 친구 관계 또한 자연의 이치와 다를 바 없음을 익히 알고 있던 추사의 심정이 이상직을 향한 마음이 세한도(歲寒圖)로 담아낸 것이리라.
 

밥은 먹을수록 살이 찌고 돈은 쓸수록 아깝고 나이는 먹을수록 슬프다는 말이 있다.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내 이웃이 있다면 더는 바라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새해에는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야겠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감사할 수 있고 그리워하며 안부를 묻고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 
 

나는 밤하늘을 보면서 나를 걱정해 주고 찾아주는 가족과 전화나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전하는 친지들이 고마웠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어수선해질수록 마음가짐을 다독이며 살아야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례식에 오지 않은 친구들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방역수치를 잘 지켜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나는 다시 밤하늘을 보며 새해의 다짐은 건강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때, 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별빛 하나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별의 찬란함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인 듯 시원했다. 별을 향해 헤일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이라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날마다 나를 비춰주는 별이 있음을 왜 미처 몰랐을까? 내가 사는 세상은 날마다 '새날' 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하늘을 보며 기도하듯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안혜숙 작가는...

 

소설가. 시인
소설 고엽, 소녀 유관순 외 10여권 
시집 봄날의 러브레터 외 2권 
現  문학과의식 발행인

 

 

 

1990년: 중편소설 ‘아버지의 임진강’ 으로 [문학과의식]에서 등단
1991년: 중편소설 ‘저승꽃’으로 KBS문학상 수상

1990년  시  집  <멀리두고 온 휘파람소리>출간
1991년 장편소설 <:해바라기> 출간
1992년 장편소설 <고엽> 출간
1993년 장편소설 <고엽 1.2부> 합본으로 출간
1994년 장편소설 <역마살 낀 여자> 출간
1995년 장편소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1996년 장편소설 <쓰르가의 들꽃>
1997년 장편소설 <다리위의 사람들> 
2002년  시  집  <사랑> 출간
2004년 장편소설 <잃어버린 영웅>
2005년 장편소설 <잃어버린 영웅> 베트남어로 번역출간
2007년 장편소설 <고엽>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
2015년  시  집  <봄날의 러브레터> 출간
2017년 장편소설 <산수유는 동토에 핀다> 출간
2019년  역사소설  <소녀 유관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