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치료에서 운동의 위상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체력 관리나 재활 차원의 '보조 요법' 정도로만 여겨졌던 운동이 이제는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직접 억제하는 과학적 치료 전략, 이른바 '4번째 항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반면 오랫동안 누구에게나 권고돼 온 '보편적 건강식'은 정밀의학의 시대를 맞아 사실상 종말을 향하고 있다. 암 예방과 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음식은 없다는 인식이 학계의 공통된 결론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전남 여수에서 열린 '나파'(NAPA·Nutrition and Physical Activity on Aging, Obesity and Cancer)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장수·암 연구 석학 300여명이 모여 운동과 영양을 둘러싼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집중 조명했다.
나파 송용상 회장(서울의대 산부인과 명예교수, 명지병원 부인암센터장)은 "암과 만성질환의 치료 패러다임이 분명히 바뀌었다"며 "이제는 병원에서의 치료를 넘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분자 수준에서 분석하는 '정밀 생활 의학'이 필수가 됐다"고 선언했다.
◇ 운동이 암세포 보급로를 끊고, 면역세포를 아군으로 되돌린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운동 종양학'(exercise oncology)이었다.
발표자들은 운동이 단순히 체력을 유지해 항암 치료를 잘 견디게 하는 수준을 넘어, 암세포가 자라기 어려운 신체 환경을 직접 조성한다는 점을 과학적 근거로 제시했다.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이어 운동이 '4번째 항암제'로 불리는 이유다.
명지병원 비뇨의학과 권휘안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이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의 분비를 억제하고, 암세포로 유입되는 영양 공급 경로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항암제가 특정 분자를 표적으로 삼듯, 운동은 전신 대사 환경을 바꿔 암세포의 '보급로'를 끊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운동은 암세포의 생존을 돕는 대사 환경 자체를 붕괴시켜 암세포를 굶주리게 만드는 표적 치료 전략"이라며 "이제 운동은 항암 치료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치료 전략의 일부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문효율 교수는 운동이 선천 면역세포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암 환자의 체내에서는 일부 면역세포가 암 미세환경에 적응하면서 오히려 암의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변질된다"며 "하지만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암의 성장을 돕던 '타락한' 선천 면역세포(호중구)들이 다시 암을 공격하는 강력한 아군으로 되돌아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강도 운동 시 근육에서 분비되는 인터류킨-15(IL-15) 등의 물질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도록 만든다고 문 교수는 강조했다.
문 교수는 이를 근거로 단 '6초' 동안 전력 질주를 반복하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IT)을 제안했다.
바쁜 현대인들도 짧은 전력 질주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방식만으로 1시간 이상 조깅한 것과 유사한 수준의 미토콘드리아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세포 에너지 대사가 개선돼 암세포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짧더라도 강도 있는 운동이 항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암 생존자들에게도 운동은 항암 치료 이후 나타나는 '가속 노화'를 완화하고, 암 재발의 원인이 되는 만성 염증 경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보편적 건강식'의 종말… "모두에게 좋은 음식은 없다"
운동과 함께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영양학의 접근 방식 전환이다. 이번 학회에서 전문가들은 '보편적 건강식'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암 예방과 치료에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 근거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개인의 유전자, 장내 미생물 구성, 단백질 발현 특성에 따라 혈당 반응과 지방 축적, 염증 반응이 크게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제시됐다.
연구진들은 또 체질량지수(BMI)만으로 비만이나 암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유전체·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기반으로 한 '초개인화 식단'이 암 예방과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생체시계 리듬에 맞춰 언제 먹느냐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회복과 노화 속도 지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간 영양학' 개념도 공식화했다.
영양학 관점에서 암과 노화의 근본 메커니즘을 뒤집는 발표들도 이어졌다.
미국 오클라마호대학 암연구소 대니 다나세카란 교수는 "그동안 기능이 없는 '쓰레기 DNA'로 여겨졌던 비암호화 RNA(lncRNA)가 사실은 암세포의 행동을 조종하는 '숨겨진 지휘관'임이 밝혀졌다"며 "녹차나 브로콜리 같은 천연 성분이 이 분자 신호 체계를 교란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항산화 연구 분야 석학인 서울대 약대 서영준 명예교수는 '항산화제의 역설'을 제기했다.
서 교수는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Nrf2)은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활성화된다"며 "무조건적인 항산화제 섭취보다는 운동이나 소식(小食)을 통해 몸에 '유익한 자극'을 주는 것이 세포를 더 젊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송용상 회장은 "운동과 영양은 이제 보조적인 건강 관리법을 넘어, 과학적 근거를 갖춘 '제4의 치료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서 "이는 건강 관리가 '감'이나 '통념'이 아닌 '정밀 데이터'에 기반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기 유전자와 대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운동과 식단을 처방받는 정밀 생활 의학이 100세 시대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