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투데이 황재연 기자]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은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내성균을 키워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가 시작한 항생제 관리 시범사업이 현장에서 긍정적인 초기 성과를 보여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13일 질병관리청과 최근 발표된 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인구 1천 명당 하루 31.8 DID(DDD/1,000 inhabitants/day)를 기록했다.
이는 자료가 공개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충격적인 수치다. 2022년 25.7 DID로 OECD 평균(18.9 DID)의 1.36배를 기록하며 상위 4번째를 차지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항생제 내성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19년 항생제 내성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에 감염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이는 입원 기간 증가, 치료 비용 상승, 심하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이다.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질병관리청은 2024년 11월부터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ASP는 병원 내에 전문 인력을 두고 항생제 처방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적의 약품으로, 정확한 용량과 기간을 지켜 사용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활동을 말한다.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여 내성균 확산을 막고 환자 치료 효과를 높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시범사업의 효과는 현장에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의뢰로 한양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 사업 참여 병원의 항생제 관리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참여 병원 모두(100%)가 특정 항생제의 처방을 관리하는 '제한항생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반면, 미참여 병원은 그 비율이 56.6%에 그쳤다.
특히 미생물 검사 결과에 따라 더 적합한 항생제로 변경하도록 중재하는 활동은 참여 병원(59.2%)이 미참여 병원(10% 미만)을 압도했다. 사업 참여만으로도 병원의 관리 시스템이 빠르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전문 인력 부족'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조사 대상인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 중 절반 이상(53.6%)이 인력이 없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긍정적 효과를 바탕으로 질병관리청은 조만간 2차년도 시범사업 참여 기관 공모에 나설 계획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은 감염에 민감한 노인과 어린이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며 "ASP가 의료 문화로 정착하고 중소·요양병원까지 확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학계와 협력해 전문인력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지침을 개발하는 등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