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며 국가 안보에 무관심해지는 젊은이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국가의 희망인 2세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주고자 우리나라의 역사를 전하는 손정관 씨가 화제다. 그는 지난 2008년부터 한국의 문화유적지를 돌며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참된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국력신장과 민족중의에 이바지한 공이 인정돼 그는 현대 한국 인물사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전세계 약 1억 6300만명이 읽고 즐기고 좋아하고 있다.
금속 활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책 '직기심경',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대파한 '행주산성'을 중심으로 지난 9일 문화투데이와 인터뷰를 했다.
직지심체요절은 금속 활자로 만든 세계 최초의 책으로 백운이란 호를 가진 승려 경한이 1372년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직지심체요절을 저술했다.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 동양 문헌실에 보관돼 있다. 1886년 한·프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 대리 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플랑시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해 갔는데, 이때 프랑스로 건너갔게 됐다.
행주산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불과 의병과 승명을 포함한 2300명으로 왜군 3만여명을 크게 물리친 임진왜란 3대첩중 하나가 일어났던 곳이다.
Q. 안오갑 공주해광사 스님 - 불교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직지심경을 널리 공표해 감사하다. 직지심경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은 어떻게 갖게 됐나.
A. 1971년 독일에 가게 됐다. 독일 유학 중 불란서에서 박병선 유학생을 만났다. 한국의 최초 여자 유학생이었다. 박병선 씨가 파리 국립박물관에 직지심열 고서 전시전이 있다고 해 독일에 있던 한국인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프랑스에 가 고서를 보게됐다. 박병선씨가 한국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심경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같이 노력하자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았다.
오는 2018년 개최되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문화 직지심경을 세계에 알리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기때문에 자긍심을 가지고 인터넷을 이용해 지식을 세계로 확장시키는데 노력을 했다.
Q. 안오갑 공주해광사 스님 - 행주산성의 주역이신 권율장군의 행적을 기록을 했는데, 그것에 대해 일부분 말씀해주신다면.
A. 내가 어릴 때 행주산성은 돌맹이로 왜군을 물리친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권율 장군이 광주목사였을 당시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 때 장성 변이중씨가 사촌과 함께 300대의 신기전을 제작해 권율 장군에게 40대를 기증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경주 탈환을 위해 보내고 또 나머지는 이순신장군에게 보낸걸로 알고있다. 그래서 권율장군은 변이중씨가 만든 신기전을 행주산성으로 올려보냈다.
우리가 이전에 알고있던 행주대첩의 행주치마론이 아니라 실은 변이중씨가 사촌과 함께 제작한 신기전.화차 300대중 40대를 행주산성에 올려보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것을 조사하다가 밝혀냈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해졌던 정충신은 조선시대 어성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대감의 제자이자 동서지간이다. 이항복대감은 권율장군의 둘째사위다.
신립장군은 왜세에 맞서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전투를 이끌었다 후에 남한강에 투신했다. 신립장군이 권율장군의 첫째사위다. 첫째사위는 신립장군 이고, 둘째 사위는 이항복대감, 셋째사위는 광주의 금남로 충무공 정충신장군이다.
행주산성 명장 권율장군의 첫째사위부터 셋째사위 전부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 세운분들이다.
<역사 흔적을 찾아서 - 행주산성, 탄금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