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암 이종욱(1884∼1969)스님은 오대산을 중심으로 수행과 포교에 힘쓴 한국 불교 수행자로, 깊은 산중에서의 참선 수행과 자연과 하나 되는 청정한 삶을 중시하며 살아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종욱 스님은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이사장, 조선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지암 스님은 1896년 출가하여 3·1운동 때 탑골공원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전국의 유명사찰에서 수학 수행한 후, 오대산 월정사 주지를 다년간 역임하고 1940년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조선불교총본산설립위원회 회장에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조계종 설립을 주도했으며 각종 시국 집회에 불교계 대표로 참석했다.
광복 이후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강원도 대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총무부장, 강원도 교구원장과 오대산 임업사 사장을 역임했다. 말년에는 번잡한 세속을 벗어나 고요한 산사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의 가치를 강조했고, 욕심을 내려놓고 본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특히 오대산의 맑은 자연 속에서 이어진 수행과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방향과 정신적 쉼을 일깨워 주는 메시지로 전해지며,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수행자의 삶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해방 이후 혼란 속에 있던 한국 불교의 재정비 과정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수행 전통을 잇고자 한 지암 이종욱 스님은 산중 수행을 기반으로 승가의 청정성과 참선 중심의 불교 정신을 강조하며 재건의 흐름에 힘을 보탰다. 특히 물질적 확장보다 수행자의 본분을 중시하는 태도를 통해 해방 이후 흐트러질 수 있었던 불교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자연 속 수행과 간화선의 실천을 통해 한국 불교가 다시 수행 중심의 전통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성담스님은 오대산 월정사로 동진 출가하여 지암 이종욱 대종사의 제자인 와운당 재흔(1919∼1994) 화상 상좌로 축발한 후, 지암 대종사를 시봉해 왔다. 특히 지암 이종욱 대종사가 1960년대 주문진 동명사에 주석할 때는 성담스님이 직접 모시면서 《금강경》을 배웠다. 성담스님은 동진의 나이에 지암 노사로부터 배운 승가 정신을 81세가 된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하루 일종식(하루 한 번 식사)을 하고 몸이 불편해도 하루 3번 《금강경》을 독송하고 있다. 지암 노사는 하루에 4번 《금강경》을 독송했다고 하는데, 외출 중에도 이 독송 규칙을 지켰다고 한다.
지암 이종욱 대종사 문도는 현재 지암정사를 중심으로 지암불교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지암 대종사의 정신과 유지를 계승하여 확장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물론 지암 대종사의 부도와 탑비는 오대산 월정사에 있고, 해남 대흥사와 가야산 해인사에도 지암 문도가 전법 수행에 매진하고 있지만, 지암정사는 지암 이종욱 대종사와 6분 제자 문도를 중심으로 한 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암정사는 성담스님의 울산 주석 사찰 대원사 신도회장님의 단월 시주로 불사가 이뤄졌으며, 앞으로 지암 명상선원만 건립하면 불사가 마무리 된다고 했다. 성담 대종사는 남은 여생의 마지막 소원은 지암정사 도량에 선원을 현대식 건물로 지어서 많은 중생들이 이곳에서 자기를 바로 보고 마음을 찾아서 자각하는 불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지암정사가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염원한다고 했다.


























